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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된 피겨 팬입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이 풍부하다거나 열성적인 팬이랄 수는 없고
수많은 피겨계의 레전드들이 명멸하는 순간을 함께 한,
역사의 증인 중 한 사람, 그 정도 될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나올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메달권의 선수.
하물며 내가 경험했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의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기량을 가진 그런 보석같은 선수가
내 나라에서 나올 거라는 기대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지요.
 
연아 선수가 주니어 시절에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도
우리나라 피겨 환경을 알기에, 앞 날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잠시 반짝하고 말겠거니..했습니다.
이게 훗날 참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일이 되더군요.
 
찌질한 고백을 하나 하자면
G&G의 그린코프 선수가 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당시
프리에서 살짝 실수를 하는 바람에
비록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하긴 했으나
내가 바라던 완벽한 프로그램 수행에 살짝 어긋났다는 이유로
그린코프 선수에게 무지 섭섭했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누구나 완벽을 추구하지만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완벽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얼마나 전설적인 선수였는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것인지 알았다면 그런 치졸한 감정 따윈 갖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 훗날에서야 알게 되요.
어느날 아침 뉴스에서 접하게 된, 아직 서른도 안된 그의 사망 소식을.
가장 좋아하던 페어지만 남자 파트너가 조금만 더 잘해줬다면.. 했던 불만은 참으로 배부른 투정이었다는 걸.
그 후로 20여 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런 수준의 페어는 아직까지 만나질 못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들이 빼어났을 뿐이었지요.
 
연아 선수가 자신의 올림픽을 완벽한 연기로 압도하며 꿈을 이뤄내고 나서
다시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감사할 거라고 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우승이 당연하다고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실수를 할 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보다,
'아..저러면 안되는데..'하는 못난 생각이 먼저 나게 되서 미안합니다.
본인은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수많은 갈등 속에 어렵게 결정한 컴피로의 복귀 전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을 겁니다.
부상 사실을 밝히면 더욱 심한 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되어 왔던 과거를 기억하는 그녀입니다.
발목이 아파와도,핑곗거리가 되는게 싫어
당황해서 다리가 떨려서 실수했다고 의연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천하의 김연아도 아픈 발목으로 클린할 수는 없습니다.
아픈 몸으로 저만큼 해준게 대견합니다.
갈라에서의 몸짓만 봐도 한 눈에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부디 큰 부상은 아니길 바랍니다.
 
가뜩이나 올림픽 이후에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 힘들었을텐데
그냥 이번 한 시즌을 풀로 푹 쉬고 그 다음에 향방을 결정해도 좋았을텐데 하는 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돌아와 달라고 너무 보챘나..하는 생각도 합니다.
더 쉬다가 와도 될텐데 지친 심신을 달래면서, 피겨 선수가 아닌 자연인 김연아로,
그 나이에 하고 싶던 밀린 일도 해보고..그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이제야 합니다.
 
피겨의 채점 방식과 배점, 가산점 체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지만
결과에 승복할 뿐, 제대로 된 판정이 아님을 압니다.
해외 언론에서 지진 가산점이다, 정치적인 우승이다 언급이 되는 상황이지만
경기내용 하나 제대로 분석하는 국내 언론이 없는 것도 갑갑한 현실입니다.
 
그러니까..그녀가 우승자로 기록되지 못하는 현실보다는
올림픽 이후의 급박했던 상황들과 주변의 변화,
그 와중에 컴피 복귀 결정과 자국의 올림픽 홍보 병행 등으로
여유를 갖고
스스로를 다독여줄 시간과 충분한 휴식을 가지지 못한 피로감이 느껴지고
시상대에서 눈물에 그간의 맘고생과 회한이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길 바란다면서 내가 그녀를 보는 즐거움을 하루라도 빨리 누리기 위해
연아선수가 돌아오길 재촉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 한 유럽인이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갔다가
그 마을의 아이들이 반짝이는 돌을 가지고 장난감 삼아 놀고..집 안에 대충 놔둔 걸 보고는
본국에 가져가서 분석해봤더니 그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고, 그는 재벌이 됩니다.
다이아몬드가 도처에 있다보니 소중함을 모르고, 그 값어치를 모르니 공깃돌로나 쓸 수 밖에요.
 
김연아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보니
언제까지고 구할 수 있는 그 다이아몬드 공깃돌 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아보입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메달권 안에 진입이 가능할 선수가
언제 또 우리에게 올 지 기대하기 쉽지 않은 미래인데
은메달 소중한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잘 한겁니다.

부상이건 아니건,다른 선수들은 실수가 없이 경기를 마쳐도 목에 걸 수 없는 메달을
그녀가 해낸 겁니다.
그녀는 우승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황금알 낳는 거위처럼 따박따박 황금덩어리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홤금알 욕심에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우승이 당연한 것 처럼 구축되어온 이미지는 그녀의 피땀의 결과입니다.
밥 먹듯 갱신한 신기록의 결과는 극기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발전한 댓가입니다.
 
당신은 자기 인생의 어느 한 순간 무엇을 위해 전력 질주해 본 적 있습니까.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해본 적 있습니까.
자기 인생의 2/3를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바라보고 살아온 소녀가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은 그간의 노력과 고통을 극복한 보상을 받는 일이겠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한 가지에 집중하던 삶의 향방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회에 도전하는 선수가 아닌 "나"을 고민하게 하는 시간을 이제서야 가져보게 되는 겁니다.
 
이곳에 하루종일 매달려
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악플을 써대고 비방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바꾸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모르고 있는 것.
김연아 같은 피겨스케이터가 당신의 일생 동안 두 번 다시 안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경기가 곧 피겨의 역사가 되고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을 함께 한 산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중에야 알게 될 겁니다.
국적을 떠나서 이런 선수가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이고,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 될 수 있었던 건지 당신들은 모를 겁니다.
 

마이클조던을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타이거우즈를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마이클펠프스의 올림픽 신화를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안현수의 플레이를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김연아의 경기를 동시대에 보며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런데 더 많은 일을 해냈을 안현수의 날개를 꺾은 건 외세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구자들이 시기와 질투에 사그라져 왔는지 역사가 증명합니다.
 
신중한 사람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는 사람은 사려깊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흠을 굳이 잡으려 들면 장점도 단점이 되니까요.

마냥 수줍고 말수도 적던 소녀 김연아보다
당당하고 대차고 자신감 넘치며 가끔은 당돌해보이기도 한 지금이 더 좋습니다.
운동선수는 그래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타선수를 비하하거나 우월감에 젖은 오만한 발언을 한 적은 없습니다.
자만감이 아닌 자신감은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은 충만한 삶을 살게 되니까요.
 
질투하는 일부 피겨가족도 한국 언론인지 일본 언론인지 모를 정도로
매국 자본 등에 업고 피겨 상식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무책임한 기사를 써내리는 무개념 기자도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와 성공을 다 거머쥔 아가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바보들도
결국은 이런 모략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알게 될 겁니다.
이런다고 당신의 삶이 달라지진 않으니까요.
 
그녀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는지
오래지 않아 알게될 겁니다.
 
김연아가 월드 1회만 출전하는 선택을 하건, 모든 시리즈를 다 출전하건
혹은 이 길을 그만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더라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이미 단 한 번 밖에 없을 이 생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간의 행적을 볼 때 어떤 길을 가더라도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할 것임을 알기에
언제 어디서라도 충만한 삶을 살 그녀의 인생을 축복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그녀 때문에 행복했고 감동받았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했습니다.
 
겸허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다시 컴피 출전을 하게된다면
소인배처럼 또 무엇인가 바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이 고맙고 행복했던 기억만은 내내 잊지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갤로거 好奇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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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의와 맞싸워 이겼던 소녀

피겨 역사상 다시 없을 천재를,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아름다운 숙녀가 되기까지 성장 과정을
그 소녀와 함께 나이 먹으며 지켜볼 수 있었다는 건 우리에겐 더없는 축복입니다.

현실을 살면서 온갖 불의와 불평등,
숱한 힘과 권력에 무소불위의 참담함을 겪는 것을 우린 철이 든다고 표현합니다.

이제 숙녀가 된 그 아이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겪었습니다.
사회 보다 더 추하다는 정치판과 같은 그곳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오로지 올곧음 하나 만으로 모든 부정과 그릇됨에 말없이 대항해 그것들을 모조리 굴복시켰습니다.

우리가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은 공전의 피겨 솜씨만이 아니라 그녀가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이정표 때문입니다.





Posted by Matryosh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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